posted by ON준 2010/09/30 14:42


안녕하세요, 온오프믹스입니다.
새로운 소식 하나 전해드려요.

항상 온오프믹스를 이용해 주시는 회원님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노력한 결과
오늘 네이버 오픈소셜에 온오프믹스 앱이 런칭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네이버 카페 / 블로그 / 미투데이에서도 온오프믹스를 이용하실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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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ppstore.naver.com/app/14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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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참가와 생성을 하실 수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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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많은 분들이 온오프믹스를 통해 쉽게 이벤트와 모임을 즐기실 수 있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위해 힘차게 달리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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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N준 2010/09/2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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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속편이 더 낫다는 평을 듣는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전편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철저한 기획과 노력이 투입돼야 한다. 종합모객시스템인 온오프믹스를 인수한 양준철 대표와 이상규 부사장이 오늘날의 온오프믹스를 만들기 위해 흘린 땀방울은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는 것 이상이었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 점점 갈수록 재미있게 전개된다는 뜻이다. 잘 만들어진 후속편 온오프믹스는 이제 자신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줄 준비가 끝났다.

사진 이종범
powerblog@tatter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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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철 온오프믹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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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온오프믹스 부사장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조우

온오프믹스는 원래 개발자인 조재호, 김대중 씨 두 분이 만든 서비스로 2007년 11월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2008년 1월 조재호 대표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온오프믹스는 가사상태에 놓이게 된다. 당시 재미삶연구소에서 데이트컨설팅을 진행하던 양준철 대표와 이상규 부사장은 온오프믹스의 소식에 안타까움을 느끼다 결국, 2008년 3월 온오프믹스를 인수한다. 기존에 있던 서비스를 인수하는 것이니 자리잡기가 좀 수월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양준철 대표는 강하게 손사래친다. 

“온오프믹스가 자리잡을 때까지 가진 걸 다 쏟아붓는 형태였다. 다행히 2009년 강원 테크노파크에 기업을 설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또한 같은 해 9월 뉴미디어 창업스쿨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상금을 받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한 대회에서도 지원을 받는 등 2009년은 외부의 도움으로 살아나갔던 시기였다.”

역시 젊은 패기의 승리였다. 기존에 있던 서비스를 이어받은 온오프믹스가 창업스쿨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건, 기존 서비스의 기본 로직만 따를 뿐, 완전히 다른 형태로 탈바꿈시켰다는 의미다. 실제로 2007년의 온오프믹스에는 비즈니스 모델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즈니스 모델 구축은 물론 오픈플랫폼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양준철 대표에게 국내에 온오프믹스와 유사한 서비스가 있는지 물었다.

“온오프믹스를 모임을 위한 플랫폼이라고 보면 트윗밋과 비슷하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트윗밋이 하나의 주제에 대한 참여자 관리만 하는 반면, 온오프믹스는 종합모객시스템이다. 종합모객시스템이라면 비즈델리가 이와 유사하지만 비즈델리는 스스로 행사를 주관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온오프믹스는 행사의 홍보와 모객을 담당하며, 세미나나 컨퍼런스 등의 행사를 관리하기 좋은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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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믹스 서비스 홈페이지

행사 모객 및 홍보를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없다면 작은 기업이 행사를 한 번 치르기 위해선 행사 자체보다 홍보비에 엄청난 돈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온오프믹스를 활용하면 이를 대폭 줄이고 편하게 행사의 퀄리티 확보에 집중할 수 있다. 온오프믹스에 행사가 올라가면 RSS나 위젯은 물론 온오프믹스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 행사정보가 노출된다. 기본적 모객 뿐만이 아니다. 대관이나 케이터링 등 행사 전반에 관한 모든 것을 컨설팅한다. 온오프믹스에서 현재 한 달에 담당하는 행사만 50~60건에 이른다.

일당백의 맨파워

그동안 오해가 있었다. 온오프믹스 서비스 이름과 회사 이름이 같아 한 가지 서비스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그러나 회사로서의 온오프믹스는 팔방미인이었다. 

“현재 서비스로서 온오프믹스가 갖고 있는 모델은 참가비에 대한 결제대행이다. 그리고 배너광고료와 유료 스킨 수익이 있다. 특별한 요청이 있는 행사의 경우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맞게 스킨을 새롭게 디자인해 주기도 한다. 그 외 MS 문자 전송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모집 후, 리마인더 역할을 하는 문자전송이나 답글이 달렸을 때 담당자가 바로 받아볼 수 있는 기능까지 연내에 만들어갈 계획이다. 서비스가 아닌 회사 측면에서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모바일 웹사이트 구축의 비즈니스 모델과 플래시 관련 애플리케이션 제작 모델을 더 갖고 있다.”

온오프믹스의 서비스를 소개하는 이상규 부사장의 말이 놀라웠던 건, 이 모든 일을 겨우 7명의 인원이 수행해 낸다는 것. 온오프믹스의 저력은 그만큼의 능력을 발휘하는 맨파워에 있었다. 사실 온오프믹스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딱 1억 원만 벌자”가 목표였단다. 그러나 2010년 8월 현재, 2~3억 원 이상의 매출이 발생했다. 그리고 올해 목표는 5억 원으로 상향조정됐지만, 현재의 흐름으로 봐선 무난하리라고 자신한다.


여름에는 선풍기, 겨울에는 군용 방한조끼로

양준철 대표와 이상규 부사장은 벤처붐이 일던 2000년 대 초반 창업한 고등학교 벤처기업가 출신이다. 고등학생 창업자들의 모임인 ‘청소년 비즈니스 연합회’를 계기로 만나, 친분을 유지하면서 비즈니스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서로의 고민도 털어놓곤 했다. 

그러나 이후 둘의 행보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양준철 대표는 처음 창업한 회사를 접고, 두 번째는 동업자와 함께 창업했으나 사기를 당해 고등학교 때 이미 빚을 떠안게 됐다. 그러다 다음(Daum)의 입사제의에 응해 사이버 대학을 다니면서 다음에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상규 부사장 역시 고등학교 때 첫 사업을 시작했다 실패 후, 두 번째 사업을 시작했으나 이마저도 군대에 가게 돼 접어야했다. 

이상규 부사장이나 양준철 대표 모두 각자 두 번의 창업과 실패의 경험이 있었던 것. 삶을 대하는 태도, 지향점, 성격과 경험 모두가 닮아서일까. 이 둘은 처음 같이 사업을 시작한 시간부터 지금까지 쭉 같이 살고 있다. 흔히들 하는 말다툼도 거의 안했다.

그러나 둘이 아무리 잘 맞는다고 해도 회사 설립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무실이 아닌 일반 가정집에서 시작해 여름에는 선풍기로, 겨울에는 군용 방한조끼로 버티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 계속됐다. 외근을 나가야 하는데 버스비가 없을 정도로 재정난이 심각했다. 그 이후, 춘천 비즈니스 파크를 거쳐, 지금 한국콘텐츠 진흥원에 안착할 때까지 그들은 몇 번이고 가쁜 숨을 쉬어야 했다.

젊은 대표의 숙련된 노하우

직원 대부분이 양준철 대표보다 나이가 많다. 운영이 어렵진 않았을까?
“첫 창업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군대를 다녀오고 직장 생활을 해보고 나니 그다지 힘들진 않다. 위계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실히 자리잡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딱히 노하우는 없다. 이상규 부사장과 나는 오랜 친구지만 사내에서는 서로의 업무 영역을 존중하고 깍듯이 존대한다. 이처럼 핵심이 되는 두 사람 정도가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랫사람들은 그렇게 따른다.”
실제로 올해 2월 9일 법인 설립 전까지 이상규 부사장이 경영을 도맡아한 만큼 그에게서 아직도 배우는 것이 많다고. 

이상규 부사장도 한 마디 덧붙인다.
“스타트업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원탁(Round Table)’이다. ‘모두가 평등하다, 우린 원탁이다 ‘라는 콘셉트로 시작하는 데 여기서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원탁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 ‘위계’까지 원탁으로 만들면 안 된다. 특히 윗사람이 어릴수록 서로간의 존중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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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믹스는 외부 업무는 양준철 대표가, 내부 업무는 이상규 부사장이 담당한다. 내부 업무는 다시 개발 분야와 기획 분야로 나눠 담당한다. 이처럼 명확한 롤 세팅도 온오프믹스의 안정적 운영의 원동력이 됐다.

국면의 전환

지난해 온오프믹스가 가장 크게 진행했던 것은 결제모듈 붙이기와 오픈플랫폼화였다. 온오프믹스의 API기능을 이용해서 다른 이벤트 서비스를 하나 기획한다고 해도 가능할 정도로 API도 구축했다. 소셜 서비스 시장이 그렇다. 하나가 잘 되면 후발주자들도 다 달려들게 마련. 그런데 아예 플랫폼을 오픈해 버리면 앞으로 나오는 업체들도 다 같이 상생해 갈 수 있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플랫폼은 열려있는 상태다. 그리고 다른 플랫폼이 나온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하나의 행사를 한 군데서만 홍보할 필요는 없는 법, 오히려 여러 플랫폼에서 동시에 진행된다면 오히려 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지며 상생하는 길로 가게 되지 않을까?”라며 이상규 부사장은 선발주자로서의 장점 대신 시장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

설레는 듯 양준철 대표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얼마 전 네이버와 제휴를 맺어 네이버 오픈 소셜에 들어가게 됐다. 카페와 블로그, 미투데이에 앱스 버튼이 생기는데, 그것을 클릭하면 카페에서 바로 온오프믹스를 쓸 수 있다”면서 “그동안 앱스 버튼은 게임 어플들만 사용했던 것인데, 비게임 어플이 네이버 오픈 소셜에 들어가는 것은 온오프믹스가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소셜 미디어 속으로

소셜 미디어 시대, 온오프믹스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양준철 대표에게 물었다.
“올해 말까지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소셜 미디어와 어떻게 잘 엮여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개발하는 것이 올해 4/4분기의 목표다. 네이버가 그 답을 알려줄 것 같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만을 위한 온오프믹스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차차 진행할 생각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진정으로 대중적인 서비스가 됐다고 느껴질 때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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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오프믹스의 양준철 대표와 이상규 부사장은 첫 번째 창업에서 단번에 성공 반열에 올라서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들의 성공의 기억과 실패의 경험은 온오프믹스의 자양분이 됐다. 무엇보다 이들은 여러 번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젊다. 그래서 더 무섭다. 아직은 벤처일 때 얼른 이들을 벤치마킹하기 바란다. 올해가 지나면 온오프믹스를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게 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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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명: 온오프믹스
  • 설립: 2010. 2. 9 (이전에는 개인사업자)
  • 대표이사: 양준철
  • 직원수: 7명
  • 연락처: 02-6080-5579
  • 소재지:
  1. (서울사무소)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641-2 KOCCA빌딩 408호
  2. (강원사무소)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 192-1 강원대학교 아산관 421호
  • 주요 서비스:
  1. 온/오프라인 모임&이벤트 관리 서비스 온오프믹스(http://onoffmi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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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ON준 2010/09/20 16:37

양준철 대표에게 듣는 고등학생 창업 스토리

벤처스퀘어에서 온오프믹스 탐방취재를 다녀왔습니다. 잘 나가는 벤처기업을 소개하려는 목적이었는데, 양준철 대표님은 회사 이야기를 넘어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 얘기를 그냥 버리기엔 너무나 귀중한 정보들이라 다시 묶었습니다.

2000년 대 초반, 정확히 말하면 2001년 8월 23일 IMF의 지원자금을 전액 상환한 직후인 2002년을 전후해 대한민국에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창업 붐이 인다. 국가적인 지원은 물론 따로 홍보비가 필요없을 정도로 언론에서도 연일 창업 벤처 소식을 메인으로 다뤘다. 이러한 흐름은 10대의 중고등학생에게도 예외 없었다. 점포가 아닌 인터넷 회선과 아이템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기성세대에 비해 인터넷과 IT에 익숙한 10대의 창업은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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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철 온오프믹스 대표



비록 여전히 벤처기업이긴 하지만 온오프믹스에서 탄탄하게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는 양준철 대표. 고등학교 때 이미 스타 CEO로 고등학생 창업 붐을 견인했던 양준철 대표가 사업에 뜻을 둔 건 중학교 때였다.

“내 꿈은 30대에 세계적인 회사를 차리는 것이다. 그러자면 적어도 20대엔 국내적(?)인 회사를 차려야 맞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고, 안 망해보고서는 어려울 것 같았다. 한 번 망하면 재기하는 데 2~3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무리 계산해 봐도 방법은 10대 때 창업하는 것밖에 없었다.”

망할 생각을 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이 재밌다. 젊은 창업자들의 장점일까? 그들은 자신의 청춘을 담보삼아 과감히 경험과 실패를 맞바꿀 배짱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너무 착하게만 운영하신 게 원인이었다. 그러면서 가세가 많이 기울었는데,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꿈을 포기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EBS에서 실리콘밸리 창업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다. 그걸 보니 스티브 잡스도 어렸을 때 너무나 불우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거기서 희망을 갖게 되고 과감히 사업 한 번 해 보자고 다짐했다.”

양준철 대표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고민을 거듭하다 다짜고짜 특목고에 전화를 걸어 “고등학교 때 창업하려고 하는데 학교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다들 귓등으로도 안 듣고 비웃기만 했는데, 평택의 한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교장 선생님이 ‘뭐 해주면 되냐’고 물으시기에 ‘일단 학교에 사무실 하나 내 주고, PC와 인터넷을 지원해달라. 그리고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중에 요청했을 때 들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흔쾌히 입학허가가 났다. 그렇게 첫 번째 사업을 시작했다. 운 좋게 붐이 일어나고 언론에 소개되면서 많은 후원자도 나타났다. 그 중에 고양시에서 사무실을 내 주겠다는 제안이 있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 시험때만 학교에 가고 수업 받은 것으로 인정을 받게 됐다. 그 이후 채용된 모든 직원들은 그 학교로 전학을 시켜서 학적을 두고 외부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형태를 갖춰나갔다.”

파격에 가까운 지원이다. 그렇다면 양준철 대표의 모교는 그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아직도 계속 진행하고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였다. 지금 고등학생들은 창업하려는 꿈을 꾸지 않는단다. 고등학생이 창업을 포기하게 된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우문(愚問)에 양준철 대표는 현답(賢答)을 내놨다.  

“내가 고등학교 때도 벤처스퀘어 같은 언론사들이 있었다. 그런 곳에서는 고등학생 벤처를 수면위로 올려 ‘붕’ 띄운다. 그런데 그러고나면 관심을 끈다. 인터뷰가 끝난 이후, 최근 근황은 어떤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하고, 케어하면서 자체 PR이 어려운 작은 기업들의 PR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단발성 기사거리로 끝내버리는 것이다. 결국 옆에서 쭉 지켜본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회사가 현재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창업해서 이슈가 됐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 20대 중반을 넘어섰는데, 그 때 그들이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알려진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도 어디에선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 얘기가 안 되다 보니 문제인 것이다. 결국 현재 고등학생들은 선배들의 창업 성공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그냥 ‘반짝’하고 떴다가 그대로 망해버렸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창업할 엄두조차 내지 않는 게 아닐까.”

당시 창업만 장려했을 뿐, 지속적인 지원이나 케어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수많은 고등학생 벤처들이 사라진 건 사실이다. 특히 남학생의 경우, 병역문제로 인해 회사를 접은 경우도 다반사였다. 허울뿐인 지원이었다. 

“당시 고등학생 벤처로 방송에 이슈화되고 나왔던 사람 중에 아직까지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 나와 위자드웍스의 표철민 대표, 베타스튜디오의 강지호 대표, 그리고 메가브레인의 이강일 대표 정도라고 알고 있다.”

양준철 대표는 벤처스퀘어가 나아갈 바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IT업계 스타트업은 많다고 해도 100~200개 정도다. 적어도 이 100~200개 스타트업에 대해서만큼은 벤처스퀘어에서 지속적으로 케어해 줬으면 한다. 벤처기업에게는 계속 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그 분야를 계속적으로 다뤄줄 미디어가 필요한데, 기존에는 조중동 같은 메이저 미디어에서 반짝 관심을 가지고 한 게 전부였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창업장려하는 붐이 일면서 많은 학생들을 벤처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 그러면서 사업에 전념해야 할 친구들을 방송에만 쫓아다니게 만들어놨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마치 버려진다는 기분을 느낄 정도였다. 그때 당시는 인터뷰를 해도 이렇게 내 말을 들어주는 식이 아니었다. 어떤 콘셉트를 정하고 와서는 “이 콘셉트로 찍자”하고 요구한다. 그럼 그게 아닌데도 그렇게 찍게 되는 것이다.

요즘 친구들이 창업에 겁을 먹는 것도 다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때 그 잘나가던 선배들 중에 지금도 잘 나가는 사람이 누가 있냐는 생각이 드니까 다들 공부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벤처스퀘어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수많은 벤처를 발굴해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PR과 케어, 멘토링 등의 프로그램을 갖춰야한다는 사명감이 불끈 솟는다.

2000년 대 초반, 벤처 창업 붐을 이끌었던 당돌한 스타 고등학생들은 지금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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